꾸준함에 대한 생각

오늘 괜히 지난 10년간 내가 몇번의 이사를 했나를 생각해보았다.

대학 입학 후 지냈던 신림동의 하숙집에서 서울대 입구역의 오피스텔로 이사, 파리로 어학연수 떠나서 처음 간 하숙집으로 이사, 신경질적이었던 하숙집 주인과 그 딸 때문에 한달간 Charles Michel 역 근처에서 민경언니와 동거, 서울의 오피스텔로 다시 컴백, 졸업 후 파리로 유학을 떠나며 임시로 15구의 살아본 중 가장 작은 집에서 5개월간 지냈고, 새 학교가 가까운 11구 Voltaire 역의 스튜디오로 이사, 쥐와 바퀴벌레가 나오는 바람에 15구 Cambronne 역 근처에서 다시 스튜디오 찾아 들어갔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직장을 찾았고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오피스텔을 구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살고 있던 La Jolla의 작은 아파트가 우리가 함께 사는 첫번째 집이 되었고, 곧 더 큰 아파트로 이사했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몇달 안 있어 또 다시 LA West Hollywood의 낡은 아파트에서 몇 개월을 보냈고,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며 The Grove 몰 가까운 곳에 있는 깨끗한 아파트로 다시 이사를 했다.

여기까지다. 이렇게 주욱 나열해본 것은 정말 몇번이었나 세어보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12번. 10년 사이 12번. 평균으로 보면 한 집에서 1년도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시로 보면, 서울-파리-서울-파리-서울-라호야-엘에이.

꾸준함, 지속, 기다리기, 습관, 시간쌓기에 관해 생각해본다.

이사를 많이 했던 만큼, 내 상황과 상태는 계속해서 바뀌어갔다. 학교가 바뀌고, 스타쥬나 직장이 바뀌고,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직장이 바뀌고, 아이가 태어나고..10년밖에 안되는 시간동안 공간이 너무 많이 바뀌어선지 문득, 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잘 적응하게 되어가는 반면, 한가지 일을 끈기있게 꾸준히 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삿짐 싸는 데는 득도했다고 할 수 있지만, 꾸준히 세느 강 혹은 한강을 바라보며 조깅을 했다거나 꾸준히 한 직장에서 근무하여 높은 직급을 갖게 되었다거나, 꾸준히 한 도시에서 살며 그 곳의 전문가가 되었다거나 그런 연속성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메달 같은 건 없다. 상황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진득하게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것 아닌가, 상황이 어떠하든 더 노력했다면 꾸준히 같은 운동 하나 해볼 수 있었을 것이고, 같은 분야의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았나. (물론 그렇게하려 노력은 많이했다. 같은 분야의 일을 찾으려 무진장 애를 썼으나 캘리포니아에서 찾기는 참 어려웠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실패. 운동은 댈 핑계가 없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그것에 10000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적어도 10년은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예로 들면,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LP를 모았고 재즈바를 십년 가까이 운영했으며 여전히 음악을 듣고 모은다. 야구를 보다가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때부터는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리며 완전히 생활리듬과 습관을 바꿔 체력을 만들고 끈기와 인내를 훈련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데에 투자한 10000 시간 외에도 그는 체력과 감성을 다지며 스타일과 리듬을 만들고 소설의 기반을 닦았다. 그리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에 매년 오르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일 뿐 아니라, 음악과 달리기에도 전문가가 되어 그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물리적 공간 이동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온라인에서도 이 곳, 저 곳을 돌며 정착하지 못하고 꾸준히 글을 쌓아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다이어리에다 매일의 사건과 감상을 짧게라도 남겨주는 습관마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어버린거다. 결국 이 곳에 다시 발을 딛고 첫 글을 쓰며 ‘꾸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유희열이 라디오 DJ로 상을 받았을 때 소감으로 라디오의 의미는 ‘시간을 쌓는 것’이라 했던 것이 생각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곳에 귀를 기울이며 하루를 정리하고 이상한 교감과 공감을 하며 잠에 드는 것이 라디오를 듣던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일에 시간을 쌓는 것, 한 사람에게 시간을 쌓는 것이 참 그립고 절실한 요즘이다. 우수상보다 개근상이 값진 이유를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결석도 안하더라.

앞으로 10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생각해보고 꾸준히 할 일들에 대해 정리를 좀 해야할 것 같다. 앞으로 10년이면, 아이가 10살. 파란만장한 10년일 것이 예상되지만, 나는 꼭 아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내 시간을 나에게 오롯이 투자해서 시간을 쌓아볼 작정이다. 이것은 이제 희망사항이 아니라 의무이다. 40대에 들어서게 될 그 때에도 이 글같은 반성이나 하고 있다면 나 자신과 내 아이에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다. 짧았지만 다양했던 좋은 경험들이 꾸준히 지속적인 무언가를 쌓아주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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